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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벽 감성 그리고 이불킥

나 상처받았어

by 그렉그의 2023. 3. 19.

바야흐로 내가 고 2때 서울의 서초구 어느 고시원에서 2개월가량 생활한 적이 있었다. 그 때 엄마는 나를 위해서 반찬이며 불고기며 이것저것 챙겨오고 그 좁디 좁은 침대 하나, 책상 하나만 허락된 그 공간을 쓸고 닦으면서 나의 초라하고 허술한 보금자리를 갈고 닦아줬다. 한달 후, 엄마가 방문해서 하루 같이 잔 적이 있었다. 홀로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면서 부실하게 밥을 챙겨먹은 30일 남짓한 날들이 힘들다고 느껴졌고 그날 같이 누운 엄마한테 엄마 나 힘들어... 했는데 엄마 왈.... "나한테 힘들다는 소리하지마. 엄마는 넌 나이때 우리엄마한테 힘들다고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어" 라고 하고 나는 소리없이 울면서 씩씩대면서 잤다. 

 

대학교 2학년때까지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엄마한테 제일 상처받았던 말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종종 저 얘기를 꺼내곤 했다. 항상 끝에는 "나 그때 진짜 상처받았잖아~" 물론 아팠다. 그당시엔. 근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모질게 말했을까 싶다. 그런 엄마의 마음이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느껴진다. 둘째가 서울에 낯선 고시원에서 공부도 잘하면서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, 힘들수는 있어도 무너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, 그런 온걱정어린 사랑하는 마음들이 엄마가 바리바리 싸온 반찬이며 서울까지 온 엄마의 시간에 증명이 되어있었는데 나는 이제서야 알아차린다. 

 

요새도 자취를 하면 효년(=불효녀)같이 엄마에게 음식을 좀 보내달라고 한다. 이걸 쓰면서도 좀 눈물이 난다. 상자 빼곡히 채소며, 깍두기며, 달짝지근한 잡채며, 홍삼 등등 야무지게도 어떻게 이렇게 단 한 공간도 남지않게 잘 쌌는지. 열어볼때마다 이건 사랑이 아니면 불가해 라고 생각이 든다. 이제는 난 알아차린다. "사랑해"라는 말이 없어도 밤 늦게까지 고심하면서 '얘를 뭘 싸줘야하나,,', 또는 "너 이거 반찬해주면 먹을꺼야?"라는 카톡이라든지, 10kg가 넘는 택배박스를 꾸려서 서울로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다 사랑으로 가득차있음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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